미션 소식

영성

COVID-19 세계적 유행에 따른 캄보디아 미션 영성 사도직의 새로운 변화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은 우리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미션의 여러 사도직도 그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4월 초부터 이곳 시소폰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성당은 공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지역도 코로나19 감염이 점점 더 확산하고 있어서, 언제 저희가 다시 일반 신자들과 함께 대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캄보디아 미션 영성 사도직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먼저 지난 3월에 영성 사도직 위원회가 다시 구성되었습니다. 김두현 신부와 인도네시아 관구에서 파견된 사이먼 타마(Simon Tama) 신부가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기존 구성원이었던 잡(Jub) 신부 그리고 저와 더불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션 안의 모든 예수회원이 이미 각자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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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2021년 JRS 캄보디아 이모저모

JRS(Jesuit Refugee Service, 예수회 난민 봉사단)는 지난 1990년 캄보디아에 진출하여 깐달과 껌뽕스프의 지역사회 농촌개발과 반티에이 쁘리업 직업훈련센터, 휠체어와 목공 및 용접 물품 프로덕션, 전기설치 및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현장 지원 활동(아웃리치) 등 화해와 평화 그리고 정의를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통해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을 개척했습니다. 이후 난민들이 캠프에서 돌아오고 학생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을 졸업함에 따라 메따까로나 커뮤니티 팀은 시엠립, 반티에이 민쩨이, 바탐방 등의 지역으로도 활동 범위를 확장하였습니다. 베트남, 스리랑카, 르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망명 신청자들이 캄보디아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JRS는 UNHCR과 협력하여 이들이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지뢰로 고통받는 이들과의 만남과 더불어 난민 발생의 원인을 막는 JRS의 활동은 그러한 고통을 초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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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저는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에 위치한 도시 뽀이뻿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왕립 프놈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지만 제 삶에 짙게 드리운 빈곤의 먹구름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생겼는데, 이는 열정 가득한 교수님이신 강인근 신부님과 신부님이 이끄시는 마가 연구소(MAGGA Jesuit Research Center)와의 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18년 저는 MAGGA 영어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의 잠재력은 여러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MAGGA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동안 저는 제 언어 능력과 비판적 사고, 이타적인 성향에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회 신부님들과 협력자들은 가난의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데 사랑의 마음과 현명한 조언으로 동반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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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교육을 위한 Fe y Alegria의 정신에 영감을 받다

지난 2019년 10월, 저는 엘살바도르에서 개최된 Fe y Alegria(FyA) 협회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전 먼저 과테말라에 있는 FyA 사도직장에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과테말라의 외딴 지역에 있는 FyA 학교 몇 군데를 특별히 방문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제 안에는 당시 방문 중에 마음에 새겨진 장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 제 방문한 학교 가운데 하나는 높은 산간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 수업에서 저를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을 때, 저는 FyA 직원 한 분에게 번역을 부탁하여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어떤 가치관을 배웠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 학생이 ‘사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이어서 ‘연대감, 정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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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우리는 함께 조금 더 멀리

몇 주 전 담임 선생님과 학생 보호자 간 일대일 면담이 있었습니다. 하비에르 학교에서는 학기마다 전 과목 선생님들과 학부모 간 면담 자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학교 문을 닫은 지금은 사람들을 학교에 초대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교사 대 보호자 간 면담 또한 전화 통화로 대체되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호자 한분 한분과 이야기를 나눌 장이 생겨 기쁜 동시에 외국인인 제가 제대로 면담을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함께 들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평이나 나눔을 미리 번역하여 준비한다 한들 제 어눌한 크메르어 발음을 보호자들이 알아들으실 수 있을지, 반대로 제가 그분들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면담을 시작하자 언어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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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손해요? 아니요, 저희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손가락을 한번 튕길 만한 짧은 순간에 우리 삶이 이렇게 급격히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있는 시엠립에서는 2020년 3월 18일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와 사찰에서의 모든 모임이 중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서로를 피하기 시작했고, 모든 기침 증상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 신자분은 제게, “좀처럼 본당에 갈 엄두가 나지 않네요. 제가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도 있어서 신부님께서 저를 만나기를 주저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이 말은 제 가슴을 쓰라리게 했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실로 우리를 서로 갈라놓았습니다. 시골 마을 방문과 수상(水上) 공동체에 가기 위한 배 타기, 어린아이들을 위한 쌀죽 나눔까지… 그 어느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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