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조금 더 멀리

몇 주 전 담임 선생님과 학생 보호자 간 일대일 면담이 있었습니다. 하비에르 학교에서는 학기마다 전 과목 선생님들과 학부모 간 면담 자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학교 문을 닫은 지금은 사람들을 학교에 초대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교사 대 보호자 간 면담 또한 전화 통화로 대체되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호자 한분 한분과 이야기를 나눌 장이 생겨 기쁜 동시에 외국인인 제가 제대로 면담을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함께 들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평이나 나눔을 미리 번역하여 준비한다 한들 제 어눌한 크메르어 발음을 보호자들이 알아들으실 수 있을지, 반대로 제가 그분들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면담을 시작하자 언어 이전에 제가 맞닥뜨린 벽은 보호자들의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교사와 보호자 간 면담은 보호자가 자녀 교육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교사가 학생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만남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면담 경험이 없는 보호자들은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혹시 자녀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부터 드셨던 겁니다. 미리 면담의 목적을 문자와 아이들을 통해 공지했음에도 몇몇 분들은 글을 읽지 못해 왜 교사가 전화를 걸었는지 의아해하셨고, 공지를 읽으셨으나 글자 그대로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 생각한 분들도 더러 계셨습니다.

다행히도 보호자께 면담의 목적을 알려드리고 아이들의 수업 태도와 학기 초보다 향상된 점, 그리고 염려되는 부분 등을 나누니 보호자들도 마음을 열고 조금씩 궁금하셨던 점에 관해 물어보셨습니다. 가령 집에서 인터넷 연결이 끊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아이들이 어떻게 진도를 따라잡는지, 숙제나 출결은 어떻게 관리되는지와 같은 수업 운영 전반에 대한 질문부터 학습 동기부여나 아이의 소극적인 태도의 극복 방법 등 아이들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온라인 수업이나 학교에 바라는 점들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짧으면 10분 길면 30분까지 통화를 하며 보호자들에게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나누고, 저 또한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면담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사는 학생의 어머니와의 면담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지역에 살지만, 항상 제시간에 수업에 들어오고 궁금한 것은 따로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서라도 숙제를 해내고 마는 학생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첫 달에는 모든 과목을 낙제했지만 지난 학기말 고사에서는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통과하는 큰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자녀의 성취도를 말씀드리고 혹시 학교에 물어볼 점이나 더 궁금한 점은 없는지 여쭈었는데, 어머니는 짐짓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잘 모르겠다고 답하셨습니다. 혹시 크메르어 발음 탓에 제 이야기를 못 알아들으신 건가 싶어 다시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그제야 당신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사실 교육을 거의 못 받았어요. 그래도 제 아이는 공부를 해서 저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직장을 갖고 잘 살면 좋겠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야기하고 오늘 무얼 공부했느냐고 물어도 보지만, 제가 아는 게 없으니 확인할 방도도 없고…….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 더 도와줄 방법은 없는지 모르겠네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속마음에 저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해서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 아이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는 것, 성적뿐 아니라 아이가 수업을 참여하는 태도에서도 변화가 보인다는 것, 그걸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재차 확인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원격 수업을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의 격려보다도 함께 사는 부모님의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 그분께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요.

면담을 마치면서 어머니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한명 한명 신경 써 주어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비단 이분 한 분만 그런 것이 아니고 30여 명의 보호자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꼭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면치레나 구색 맞추기가 아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보호자들이 여태껏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우리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올라왔습니다.

학교는 보호자들과 발맞추어 아이들이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입니다. 특히 교실이 아닌 가정에서 원격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학교만의 힘만으로는 교육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매일의 수업이 아이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염원과 작은 핸드폰을 붙잡고 어떻게든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의 마음과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3개월. 불안정한 인터넷 연결과 전화를 붙잡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거나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들에게 매일 같이 전화하는 날도 벌써 3개월째입니다. 끝이 요원해 보이는 날들에 힘이 빠질 때면 핸드폰 너머로 들은 목소리를 다시 기억해보고 학생들이 채팅방에서 부지런히 숙제 마감 기한이나 오늘 수업에 관해서 떠드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한다면 하비에르 학교는 조금 더 먼 여정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허정수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