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온 편지

저는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 소속 연학 수사인 다모 쭈어 수사입니다. 저는 지난 2011년 예수회 양성과정을 밟기 위해 필리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후 중간에 잠시 캄보디아에 돌아가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에서 2년간 실습기를 보냈습니다) 오늘 저는 양성기 예수회원으로서 저의 삶과 신학 공부에 대해 몇 가지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현재 저는 필리핀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캠퍼스 내에 자리한 아루페 국제 공동체(Arrupe International Residence)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예수회 연학 수사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특히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수사들이 많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루페 공동체에서의 생활이 저의 첫 국제 공동체 생활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집의 특별한 점이라면 이는 제련된 순간의 이냐시오적 정신입니다. 제련된 이냐시오적 정신을 말함에 있어서 저는 그 어떤 이냐시오적인 용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가정환경, 심지어 역사적 편견 등에도 불구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우정과 이해가 자라는 문화의 뒤섞임에 가깝습니다.

이곳 아루페 국제 공동체에서는 저희가 농담처럼 부르는 ‘아루페식 영어(Arrupean English)’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로 다른 나라 출신 수사들의 다양한 억양을 이해하려는 노력 외에도 진실한 무언가가 있는데, 이는 아루페식 영어가 도움이 되는 우정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마 전 이곳 아루페 공동체 출신 베트남 예수회원들이 베트남에서 나눔을 하기 위해 함께 모여 있는 사진을 받고 무척이나 감동했습니다. 이는 저마다 사도직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어지는 우정에 대해 말해줍니다. 사실 이런 것은 예수회에 매우 필요한 부분인데, 왜냐하면 우리 예수회원들은 보통 여러 사도직에 매여 있을 때면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면을 띠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역사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우정과 이해를 언급했을 때, 이는 특별히 저 자신과 태국 및 베트남 예수회 형제들 간의 우정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역사적 고초에 대한 증오와 원한의 미궁에 갇혀 있고 이들 국가의 침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반(反)베트남 반(反)태국 정서로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저는 태국 및 베트남 예수회 형제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이 형제들로부터는 배울 점이 많은데, 특히 신앙과 인류 발전에 대한 열정의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태국과 베트남 형제들을 더 잘 알아갈수록 캄보디아가 인류의 발전을 향한 열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여전히 애국적인 사고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실 애국심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애국심은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찌감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매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사고와 상호작용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역사적 편견을 초월하고 ‘국가적 회심(national metanoia)’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곳 필리핀에서의 삶은 저의 역사적, 민족적 편견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체험을 부여해주었습니다. 이는 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었으며, 저는 이 점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폭넓은 가치관을 지닌) 애국심을 키우는 것과 같은 일을 캄보디아 국민들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신학 공부를 점점 마쳐가는 이 무렵에 여러분의 기도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흐르는 듯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제 3학년 과정의 시작을 앞두고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2022년에 예정된 부제품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형제들과 함께 (아래 줄 파란 상의가 다모 수사)

다모 쭈어 SJ

필리핀 아테네오 데 마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