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집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떠나며

7월 30일 늦은 오후, 프놈펜 깜뽈에 있는 생태환경 프로그램 묘목장을 떠나며 나는 우울감을 느꼈다. 그 순간 지난 3년 동안 내가 품었던 삶과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다 분명해졌다. 내가 가족처럼 여겼던 JSC 생태환경 팀과의 생활, 우리가 함께 지은 묘목장(나는 그것을 내 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 명의 지역 사회 파트너(우리는 공동의 집을 돌보는 같은 꿈을 공유했다)까지. 며칠 안으로 나는 그들 모두를 저 뒤 편에 남겨 둘 예정이었다. 난 애써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걸음을 멈춘 다음 기도를 하고 다정하게 눈길을 돌려 바라보아야 했다.

캄보디아를 떠난 지 거의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캄보디아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슬픔, 기쁨, 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이 작용하지만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감사함이다. 3년 3개월을 머무는 동안 가장 고마웠던 세 가지 선물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나는 마치 가족처럼 환영과 환대를 받았다. 나와 다른 언어, 문화,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사람들의 개방성과 부드러운 태도는 나를 이 모든 낯섦의 한 가운데에 편히 놓아주었고, 곧 나는 스스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생태환경 프로그램 팀과 세 곳의 협력 공동체인 쁘레이 랭의 끄발 클라 공동체, 스떵 센의 팟싼데이 중학교 그리고 몬돌끼리의 프농 원주민 공동체 간에는 공유되는 신뢰와 존중, 사랑 및 관심이 있었다. 난 우리 팀원들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팀은 지역 공동체의 집에 초대되어 가족과 식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놀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둘째, 우리 팀과 나는 상호 신뢰와 존중, 꿈을 공유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역 사회의 리더인 동시에 환경 보전에 대한 열정을 가진 협력자들이 있어서 운이 좋았다. 그들이 이끌면 우리는 따르곤 했다! 파트너십은 나무 심기, 삼림 순찰, 나무 축복, 멘토링 및 과학 연구와 같은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삶을 공유하는 데에도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며, 우리가 함께하는 어딘가 즈음에서는 하느님의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롤하이저(Rolheiser)가 말했듯이 “기도와 마찬가지로 일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특권적인 방법이다. 일할 때면 그분과 협력하여 수고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느낀 바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난 캄보디아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도 같은 사랑의 얼굴을 보고 느끼는 은총을 입었다. 사실 이는 내 오랜 영적 사제의 기도이자 바람이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나로서는 원래 1년만 하기로 했던 캄보디아에서 봉사를 3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결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삶과 일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내게 위안의 원천이 되었고, 그들은 내게 평생 남을 삶의 방식, 즉 천천히 일하고, 팀으로 일하며, 서로 완전히 신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괜찮아요 언니. 별일 아닌걸요!”

솔직하고 정당하게 말하면, 캄보디아에 머무는 동안 단 한 가지 어두운 점이 있었다. 바로 출발을 둘러싼 상황이었다. 내게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는 특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 계획보다 일찍 떠나야 했으며, 필요했고 간절히 원했던 (프로그램) 지속을 준비하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캄보디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달릴 길을 잘 달렸다! 머무는 동안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캄보디아 사람들로부터의 위안이 실망을 더 크게 웃돌았다.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 기회를 영원히 감사히 여길 것이다.

리즐 림

전 JSC 생태환경 팀 협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