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매우 다른 반티에이 쁘리업

오랜만에 캄보디아에 돌아온 직후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 이하 ‘반티’)을 다시 방문해볼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실은 두 곳의 반티였는데, 첫째는 원래 있던 공동체 건물 두 채와 리치 수사 기념비가 기존의 장소로부터 꼼꼼하게 옮겨진 새로운 반티였고, 그다음이 정부 프로젝트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자, 새로운 건물을 위한 길을 내기 위해 기존 건물들이 거의 모두 파괴되어 버리다시피 한 예전의 반티였습니다.

저는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반티에서 리전시 수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캄보디아 정부가 반티의 땅을 환수했다는 소식과 반티가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다는 소식을 저 멀리 스페인에서 들었을 적에 정말 가슴이 아팠고, 너무나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그래서 쁘리업 써(Prieb So) 공동체가 이번에 새로운 반티로 옮겨간 두 건물에 가구 배치를 하러 갔을 때, 전 기존 공동체 건물이 어떻게 산산이 해체되었다가 새 반티 자리에 다시 전처럼 배치되고 세워지게 되었는지 직접 볼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새 반티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반티의 새로운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복잡다단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우선 두 집이 다시 조립된 방식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비록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전과 똑같았습니다. 공간과 치수, 문과 기둥, 나무의 질감, 경당, 부엌, 방,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원래대로 복구되어 있었습니다. (조금은 새 단장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놀랍게도, 두 건물 사이의 거리마저 예전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제가 사도직을 하던 시절 살았던 집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매주 갖던 모임, 매일 미사, 식사 시간, 해먹에 누워서 보내던 휴식 시간, 장마철에 나무 덧문을 이용했던 일, 푸르고 활기찬 논을 바라보던 옛 추억의 일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를 포함해 이 공간을 함께 공유했던 모든 사람, 선생님, 직원, 학생들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집은 예전 그대로인 듯 똑같아 보였으며, 여전히 과거의 많은 개인적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추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과 나이에 다소 어색하고 낯설게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새 반티에 자리한 리치 수사 기념비와 집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예전 터에 있던 반티가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가구를 옮기고 정리하는 동안 상실감과 함께 씁쓸함과 슬픈 마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어둡고 암울한 것만은 아닙니다. 반티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현장 지원 활동(Outreach)과 생태환경 프로그램으로 계속됩니다. 물론 미션의 전망은 바뀔지 모르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동반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캄보디아 사람들을 돕는 반티의 정신 만은 계속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날 모두 함께 모여서 힘을 모아 가구를 배치한 일은 아주 훌륭한 공동체 활동이었습니다!

추신: 곧이어 저는 예전 반티를 방문했고, 하얀색 막사 건물 중 메콩 휠체어팀이 남아 있는 단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폐허가 가져다준 절망감과 공허함에 뭐라 할 말을 잃었지만, 그 가운데로 보이는 낯익은 메콩 휠체어 직원들의 얼굴을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길 위에서도 유산은 계속됩니다.

김두현 SJ

영성 사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