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ie's 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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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에이 쁘리업을 보내며,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처음 여행을 다녀간 후 10년이란 시간 동안 반티에이 쁘리업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처음 그곳에서 저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고 말을 못하는 농아나 다름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어디를 찾아갈 수 없었고, 식당에 가서 주문 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했던 저는 그런 상황들이 불편했지만, 남의 도움 없이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던 제가 그들과 일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저의 가장 강력한 언어는 웃음이었습니다. 알아들어도 웃었고 못알아 들어도 웃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은 웃음 밖에 없었습니다. 가끔은 바보가 된 것 같고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단순해지자 생활도 단순해지고 마음도 단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12월, 한 달 일정이던 저의 여행은 3개월을 지나, 어느덧 반티에이 쁘리업의 졸업식에 참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저는 이미 이곳에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가진 것 없는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보았고 그것은 너무나 강력해서 차마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친구들은 제가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돕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싶었습 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의 사람들은 가난했으며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차별받는 그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배운 것은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함께 살아 가는 일’이었고, 그것은 제가 잊고 있던 삶의 보편적인 가치와 삶의 다양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쳐 직업을 갖게 하는 학교의 의미를 너머,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집(home)의 역할을 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가족이 되어주는 것. ‘함께’라는 것은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함께 사는 것은 남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이고, 남을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스스로를 회복하는 힘을 만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저를 둘러싼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저 자신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것은 저의 신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을 거쳐 지나갔습니다. 저처럼 여행을 왔다가 머물던 사람도 있었고 무언가를 찾아 떠나 온 사람도 있었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눌 것을 준비하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타인이었고 이방인이었습 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이방인을 환영하고 받아 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였고 어떠한 문제도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완벽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여서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였습니다.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힘이 아니며 반티에이 쁘리업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쌓여 만들어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체가 가진 힘을 나눠 주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과의 비교우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삶의 태도를 보며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는 신비였습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이 보여준 ‘공동체의 힘’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희망이 되어 전해지길 바랍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류진희 작가님은 여행차 캄보디아에 잠시 들렀던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 반티에이 쁘리업과 캄보디아 미션의 협력자로 봉사했습니다. 때로는 봉제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때로는 장애인 학생들의 벗으로서 보낸 시간은 지난 2020년 반티에이 쁘리업의 30년 역사를 반추하는 십자가 전시회 <기억의 형태> 展과 2023년 <빈자들의 집> 展으로 열매 맺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