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우리 본당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불교 이외에 다른 종교에 대한 체험이 전혀 없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 혹은 그러한 단어를 한 번이라도 머릿속에 떠올려나 보았을까 싶은 아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다 보면 이 친구들이 일상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놀라는 일이 적지 않다. 성가를 유행가처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는 것을 처음 보았던 날, 실은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른 신나는 음악을 두고 하필 왜?)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에 자기들끼리 벤치에 둘러앉아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불러온 듯이 미사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적에는 두 귀를 의심하며 부족한 내 크메르어 실력을 탓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전 세계, 특히 동남아시아를 휩쓰는 한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대중가요 또한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모습에서 오랜 신앙생활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는 점은 늘 놀랍다.

아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은 더 놀랍다. 이는 함께 산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지역교회는 한국처럼 속성으로 세례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대부분은 (교리공부를 하고 있더라도)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쩌다 기도를 부탁하면 처음에는 짐짓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기도를 시작하는데, 다들 어찌나 달변가들인지 결코 중간에 머뭇거리거나 짧게 끝마치는 일이 없다. 같은 나이의 한국 학생들은 물론이요, 나름 신앙생활 좀 했다는 청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학생들이 이곳 기숙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고작 3년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에 관해 일절 모르던 우리 아이들은 이 3년이란 시간 만에 다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고 떠나게 된다. (전례 준비는 또 얼마나 기막히게 잘하는지!) 물론 기숙사 품을 떠난 아이들의 이후 신앙 여정이 어떠한 궤적을 따라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캄보디아 가톨릭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에 대한 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러나 사제나 수도자들이 믿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만큼 성장한 점을 고려하면 이들 내면에 자리한 순수함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내일모레는 우리 본당의 주보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축일이다. 축일에 맞추어 본당에서는 새로이 여덟 명의 기숙사 학생들이 세례를 받게 된다. 특히 그중 절반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졸업반이라 여느 때보다 바쁠 시기지만, 기특하게도 시간을 쪼개어 지난 2주 동안 교리공부 보충 및 세례 피정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나름의 준비를 했다. 특히 어젯밤에는 기숙사 모든 식구가 성당에 모여 세례자들을 위한 떼제 기도를 드렸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지만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이 주는 새로움 안에서 모두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낮에 마치지 못한 일을 마저 하기 위해 아래층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위층에서 무언가 기도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옴을 느꼈다. 이미 모든 마무리를 하고 정리를 할 시간이었기에 의아하다고 여긴 나는 잠깐 하던 일을 멈춘 채 다시금 성당으로 올라갔다.

성당에 올라간 내가 마주한 광경은 실로 잔잔한 감동이 이는 장면이었다. 조금 전까지 모두 모여 기도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며칠 뒤 세례를 받게 될 여덟 명의 학생들이 제대를 향해 나란히 앉아 돌아가며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알아서 정성스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 순전함과 경건함에 절로 숙연함이 올라왔다. 자연스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낡은 휴대전화 카메라로는 담기 어려운 짙은 어둠이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세상 어떤 카메라를 가져와도 이 여운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내 두 눈에, 그리고 기억과 마음속에 최대한 깊이 이 순간을 각인하고자 뒤에서 아이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함께 기도했다.

나는 캄보디아를 사랑하는가? 솔직히 아직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순수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내 안에 맑음이 자리한다.

이제 얼마 후면 아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택한 성인의 이름을 받아 그리스도인으로 다시금 태어난다. 우리 아이들의 맑은 영혼이 성인들의 전구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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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호 세례자 요한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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