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의 역사

캄보디아에서 예수회의 활동은 지난 1979년 긴급구호와 난민을 위한 가톨릭 사무소(COERR)를 통해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얼마 후인 1981년 예수회 난민 봉사단(JRS, Jesuit Refugee Service)이 태국 국경의 난민 캠프에 있는 캄보디아인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난민 캠프에는 베트남의 침공과 크메르루주 정권의 몰락으로 야기된 내전으로 발생한 60만 명에 이르는 캄보디아인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과 더불어 교육은 난민 캠프에서 활동하던 캄보디아 미션의 개척자들에게 첫 번째 우선순위였습니다.

1990년, 예수회 난민 봉사단은 캄보디아의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분야에서 봉사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사회복지부와 협약을 맺고 캄보디아 국내에 진출하였습니다. 첫 구성원으로 노엘 수사(Br. Noel Oliver, S.J.), 데니스 수녀(Sr. Denise Coghlan, RSM), 앗 수녀(Sr. Marie Jeanne Ath, CDP), 접 신부(Fr. Jub Phoktavi, S.J.,당시 봉사자였으며 후에 예수회 입회)가 입국하여 프놈펜에 예수회 미션 사무소를 건립하였습니다.

1994년, 그때까지 예수회 난민 봉사단 캄보디아 지부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것에서 벗어나 JSC(Jesuit Service Cambodia)가 따로 설립되어 캄보디아 미션의 프로그램과 활동이 더욱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JSC는 같은 해 예수회 총장 콜벤바흐 신부(Fr. Hans-Peter Kolvenbach, S.J.)에 의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콜벤바흐 신부는 캄보디아 미션을 예수회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구(현재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Jesuit Conference of Asia Pacific)에 위임하였습니다.

1997년, 당시 JSC 책임자였던 데니스 수녀와 다른 JSC 팀원들이 핵심적 임무를 수행했던 지뢰 금지 국제 운동(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ICBL)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뢰 폭발로 양쪽 다리를 모두 잃은 JSC 팀원 툰 찬나렛(Tun Channareth)씨가 ICBL을 대표하여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2000년, 캄보디아 가톨릭교회의 세 개의 행정단위 중 하나인 바탐방 지목구(Apostolic Prefecture of Battambang)의 새 지목구장으로 예수회 스페인 관구 출신 선교사였던 키케 몬시뇰(Msgr. Enrique (Kike) Figaredo, S.J.)이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예수회 캄보디아 미션의 활동이 그 범위와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6년, 콜벤바흐 총장은 캄보디아 미션을 예수회 한국 관구에 위임하였습니다. 이에 제병영 신부(Fr. Gabriel Je, S.J.)가 2007년 캄보디아 미션의 초대 한국 관구장 대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어서 2013년에는 오인돈 신부(Fr. In-don Oh, S.J.)가 제2대 관구장 대리로 임명되었습니다.

2014년, 캄보디아 미션은 오랜 식별 끝에 번띠어이 미언쩨이주 세레이소폰에서 새로운 교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Xavier Jesuit School Cambodia)로 명명된 이 학교는 지역 학습 센터,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 학교 및 교사 재교육 센터 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9년, 지뢰 폭발로 인해 팔이나 다리를 잃은 이들과 이외에도 다른 장애를 지닌 장애인들을 위해 JRS가 지난 1991년에 설립한 반티에이 쁘리업이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습니다. 처음 땅을 임대한 캄보디아 당국이 해당 대지에 더 많은 기관이 소속된 국립재활센터를 건립하기를 원하면서 캄보디아 미션은 고심 끝에 미션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자 많은 협력자와 예수회원들의 추억이 깃든 이곳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근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2,000명 이상의 젊은 캄보디아 장애인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을 통해 장애로 인해 상처 입은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는 동시에 직업과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