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학교의 평범한 일상

아침 5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시간, 하비에르 학교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의 아침은 일찍 시작됩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면 저도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제가 학교에 처음 도착한 것은 2020년 2월 첫날이었습니다. 아는 현지어라고는 “안녕하세요”뿐인 상태였습니다. 당시 봉사자 숙소에 빈방이 없던 탓에 저는 우선 학생 기숙사 건물들 가운데에 있는 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일상에 가까이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길에서 만난 아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느라 발걸음이 늦어지는 것은 곧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오후에도 아이들은 분주합니다. 텃밭에 물을 주는 아이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식사 준비를 하는 아이들, 뒷마당에서 빨래하는 아이들, 책을 읽는 아이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항상 까르르 웃고 밝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도 환해집니다. 만일 제가 아이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며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줍니다.

저녁 식사 후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재미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공부하는 아이들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일 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하지만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인사를 건네는 통에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고, 저 역시 그날 공부한 크메르어를 써보려고 더듬거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방문 앞에 당도할 즈음에는 어느새 30분에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합니다.

아이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돌아보니 실은 아이들이 제 선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로부터 비단 언어만 배운 것이 아니라, 꽃피고 있는 ‘사랑’을 보았고 배웠습니다. 그 어떤 거리낌이나 낯가림 없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가없는 미소와 사랑을 주는 모습이 예쁘고 신비롭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제가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은 활짝 열려 소박하고도 겸손하게, 온전히 사랑하며 작은 것도 나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것이 익숙한 이들에 비해, 여전히 어떤 생각의 틀에 갇혀서 사랑 앞에 망설이는 저의 모습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아픈 역사의 잔재가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오랜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아온 캄보디아에서, 예수회 미션이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가장 소외된 지역에 세운 학교가 이 하비에르 학교(Xavier Jesuit School Cambodia)입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지어졌고 지금도 건축이 진행 중입니다. 학생들 중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가정 형편이 특히 어려워서 학비를 지원받아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비록 캄보디아의 교육 현실은 아직 열악하지만, 저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보며 마치 황폐한 땅에서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교사들과 세계 곳곳에서 조용히 후원하는 분들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크신 손길을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3월부터 전국적으로 내려진 휴교령 이후,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하던 교정에는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들만이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이 소중하고 그리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날들입니다. 그리움으로 더욱 무르익었을 사랑을 지닌 이 아이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할 줄 아는 이 아이들, 다른 사람을 존재 자체로 사랑할 줄 아는 이 아이들에게서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심어주신 사랑의 씨앗이 이미 싹을 틔우고 있음을 봅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희망이 캄보디아뿐 아니라 더 널리,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고 움직이기를 소망합니다.

봉선아 가밀라

봉선아 가밀라

NGO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소속 구호활동가. 캄보디아 예수회 미션의 사도직 가운데 하나인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의 협력자로 활동하였습니다.